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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정보모음집

미국사 요약 앙드레 모루아

by 홍멍구 2022.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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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미대륙 발견자는 누구일까요?

 

노르웨이인 레이프 에릭슨이 콜럼버스보다 대략 500년이전에 미대륙중 현재 뉴펀들랜드 지역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1492년에 발견했습니다.

 

1607년에는 영국 초최의 식민지 제임스 타운이 건설됩니다.

 

영국왕 제임스 1세에게 식민지 사업권을 받은 버지니아사와 플리머스 사의 주도로 항해를 시작해 체서피크만에 제임스포트를 건설했다. 미국의 탄생지입니다.

 

1773년엔 보스턴 차 사건이라는 유명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영국이 식민지에 당밀법, 인지법, 타운센트 법등 식민지에 부과한 각종 세금으로 인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반영 분위기가 고조 되었는데요 영국이 동인도 회사에 식민지로의 차 수출에 대한 독점권 부여하고 수출관세를 면제해줌으로 인해서 차 무역으로 돈을 벌던 미국인들이 살길을 잃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결국 세척의 동인도회사 소속의 배에 올라가 차 상자를 바다에 던졌고 이는 독립전쟁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1774 조지아를 제외한 식민지 대표 56명의 대륙회의를 시작으로 75년에 독립전쟁이 시작되었고, 76년에 토마스 제퍼슨이 독립선언서 발표했습니다. 미국 독립 전쟁 이후 83년 영국이 미국 의 독립을 승인했습니다.

 

1789년엔 조지 워싱턴 만장일치로 미합중국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 되었습니다. 세계사에서 최초로 국민이 직접 뽑은 대표가 국가 원수가 된 사건으로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8. 1803년엔 미국이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를 1,500만불에 매입, 전보다 영토가 두배로 증가 (1제곱 킬로 미터당 고작 7달러), 서부개척의 발판.

 

9. 1818년에는 영국과의 조약을 통해 레드강을 얻었습니다.

 

10. 1819년엔 플로리다 조약이 있었습니다.

 

실제 조약의 이름은 애덤스-오니스 조약이고 이 조약에서 스페인은 플로리다를 미국에 넘겨주는데 동의했습니다.

 

11. 1823년에는 먼로 독트린이라는 제임스 먼로 대통령의 고립주의 외교방침이 등장합니다.

 

미 대륙에서 유럽의 식민지 건설 금지, 미국은 유럽 열강의 전쟁에서 중립을 지키겠다고 합니다.

 

1845년엔 텍사스 병합이 있었습니다.

 

텍사스 공화국이 자발적으로 미합중국에 병합 하는 것에 서명 했습니다. 미국에 텍사스의 합병은 대외적으로 멕시코와의 관계, 대내적으로는 노예제도의 확대에 따른 남북 대립의 격화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이로인해 1년뒤 맥시코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12. 1846년엔 미국과 영국 사이의 오리건 조약으로 미국은 아이다호, 오레곤, 워싱턴 전 지역과 와이오밍과 몬태나 일부 지역 등을 관할하게 됩니다.

 

14. 1848 멕시코의 양도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멕시코는 괴달로페-이달고 조약으로 1500만 달러를 받고 미국에 대한 부채를 탕감 받는 대신 국토의 절반에 해당하는 광활한 땅을 미국에 넘겨주었다.

 

1853년엔 개즈던 매입으로 영토가 확장됩니다.

 

이때가 미국사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남북전쟁이 일어나는 시기이다.

 

남북전쟁의 원인이 노예제 폐지에 따른 남북 간의 갈등으로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당시에 단순히 노예의 인권이 중요해서 전쟁까지 일으켰을까요? 경제적 주도권을 얻기 위한 남북의 대립이라고 보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북부는 산업화로 인해 빠른 발전을 보이고 있었고 남부는 목화농업과 노예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1852년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라는 유명한 책이 출간 되었고 반노예정서를 불러일으킨 대표적 소설로 알려져 있다. 1860년 링컨이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7개주가 탈퇴를 하며 남부연합을 형성하며 본격적으로 대립이 시작된다. 결국 1861년 전쟁이 시작되고 63년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이 있고 2년뒤 게티스 버그 전투를 끝으로 남북전쟁은 북쪽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4년간 전사자가 62만명에 달하는데 이는 20세기에 일어났던 모든 전투에서 사망한 미군 전사자를 합친것보다 많다고 합니다.

 

1867 알래스카 매입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720만 달러에 알래스카를 매입한다. 당시에는 엄청난 비판이 있었지만 지하자원이 발견된 뒤로 모두가 급격히 태세를 변환했다.

 

1886 자유의 여신상 건립

 

1898 하와이 합병

 

1914 1차 세계대전

 

1917 미국 참전

 

독일이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전쟁을 일으키려 했다는 전보와 독일잠수함의 계속되는 미국 공격으로 미국은 참전 결심. 민주주의 수호를 내세운 이권획득. 군수물자 판매로 엄청난 경제적 부를 축적

 

1919 국제연맹

 

미국은 먼로주의에 어긋난다는 상원의 반대로 가입 못함.

 

1929 주식시장 붕괴 대공황초래

 

1933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취임, 뉴딜정책

 

연방정부의 기능과 대통령의 권한 확대, 미국의 전통적인 자유방임주의 포기 , 애덤스미스의 국부론 (보이지 않는 손) 반대, 케인즈 수정자본주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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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 2차 세계대전 발발

 

독일의 폴란드 국경 침공으로 시작, 미국 중립 선언

 

1941 일본의 미국 영토 공격으로 미국 참전

 

1945 독일 항복, 포츠담선언(일본의 항복 요구),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일본 항복, 국제연합UN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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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마셜플랜, 냉전시작

 

91년 소련붕괴까지 냉전 지속, 유럽의 동맹국 재건을 위한 미국의 경제적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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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연설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왜 미국사를 알아야 할까요?

 

미국, 전 세계 누구하나 모르는 이 없는 세계 제일의 강국의 역사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굉장히 짧은 편이다. 식민지 시대 전후와 독립혁명, 남북전쟁과 1차 세계대전, 대공황, 뉴딜정책 등.. 한번쯤은 들어봤음 직한 역사적 사실들이 책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들었던 의문점은 우리가 왜 타국의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였다. 책을 읽고 나서 미국사는 짧은 기간 장족의 발전을 이뤄낸 압축된 역사 보고서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미 우리나라의 경제적, 사회적 측면을 훨씬 넘어선 그들의 과거는 결국 우리가 맞이해야 할 현실일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우리는 미국사에 대해 한번쯤은 되짚고 넘어가야 한다.

 

-저자 앙드레 모루아

 

앙드레 모루아는 평이한 문장을 사용하지만 그 속에 유머가 섞인 기품을 느낄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다소 읽기 지루하고 힘들 수 있는 역사서를 유연하고 평이한 문체로 풀어내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저서를 읽고 있다. 그가 남긴 말 중 일은 권태와 악행과 가난을 멀리하게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의 다방면의 저서와 끊임없는 집필활동, 칸영화제 심사위원등을 역임한 다양한 활동이 이를 뒷받침 해 준다. 그의 저서 [나이드는 기술]에서 나이를 먹는 기술에 대해 남긴 말이 있다. ‘나이를 먹는 기술이란 뒤를 잇는 세대의 눈에 장애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존재로 비치게 하는 기술, 경쟁상대가 아니라 상담상대라고 생각하게 하는 기술이다.’ 나이를 먹은 사람이야 말로 살아있는 과거이고 증명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역사서를 써 내려 갈 때 후대에 도움이 되기 위한 도움을 주는 기술을 사용한 것이 아닐 까 한다. 더군다나 흥미로운 점은 프랑스인인 작가가 미국의 역사서를 썼다는 점인데 독립전쟁 당시의 프랑스 역할에 대해서는 다소 프랑스인의 입장이 담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용

 

미국의 역사는 식민지 시대로부터 시작한다.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기점으로 유럽의 여러 열강들이 이권다툼을 바다건너로 까지 넓히기 위해 건너오면서 시작된다. 영국 최초의 식민지인 제임스타운을 비롯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넘어온 이주민들에 의해 세워진 플리모스 등 다양한 식민지들이 각자의 이득을 위해 건설된다. 기존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과는 우호적 혹은 적대적 관계를 각자 유지 해 나가며 살지만 척박한 환경과 질병으로 인해 수많은 이주민들이 병들거나 사망한다.

이후 프랑스와 인디언 그리고 영국의 오하이오 계곡을 사이에 둔 전쟁이 일어나고 영국의 승리라는 결과가 식민지간 연합을 이끌어 낸다. 이는 이후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에 초석이 된다. 하나로 뭉친 식민지들은 여타 식민지와 달리 본국의 직접 통치를 받는 것이 아닌 자치 의회와 자치 노예제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에 대한 본국의 간섭은 거주민들의 불만을 사기에 충분했고 이는 독립혁명으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보스턴 차 사건이 있다. 이 사건 이후 식민지의 대표연합은 영국 국왕 조지 3세에게 보스턴 차 사건으로 인한 배상을 취소하여 달라고 말하지만 그 제의는 거절당하고 결국 무력 충돌이 일어난다. 결국 토머스 제퍼슨에 의해 독립선언서가 작성되고 1789조지 워싱턴이 미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임명된다.

미국은 이후 프랑스로부터 로키산맥을 포함한 루이지애나 지역을 매우 헐값에 매입하고 본격적인 서부개척을 시행한다. , 영 전쟁과 인디언 추방법의 제정, 멕시코와 의 전쟁 등 전쟁의 여파가 아물 새가 없이 계속된다. 골드러시라는 유명한 사건도 있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발견된 사금으로 인해 일확천금을 노리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미국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남북전쟁이 일어난다. 미국의 북부와 남부는 초기부터 경제적, 종교적인 틀이 달랐다. 남부지역에서는 노예제도가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경제적 수단으로 자리 잡았고 폐지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반대했던 북부는 링컨을 필두로 승리를 거두고 노예는 해방된다. 결정적 전투로는 게티즈버그 전투가 있다. 링컨은 후에 남부연합의 소속이었던 존 부스에게 저격당하여 사망한다.

미국은 이후 본격적으로 세계로 발을 뻗는다. 러시아의 땅인 알래스카를 사들이고 필리핀과 괌, 하와이등으로 영토를 넓혀 간다. 동부와 서부를 잇는 대륙횡단 철도를 완공하여 대외적 활동의 증대뿐만 아니라 내수의 원활한 교류에도 신경을 쓴다. 자본주의의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결과중 하나인 독점을 금지하기 위한 법을 제정하기도 하고 파나마 운하를 만들어 태평양과 대서양을 가로지를 수 있게 했다.

20세기에 이르러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중립을 지키던 미국은 결국 참전하게 된다. 전쟁 중에 미국은 전쟁 물자를 연합국에 수출하여 엄청난 부를 얻게 된다. 이후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 선언을 하고 세계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국제연맹이 만들어진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대공황을 맞이한다. 승승장구하던 미국의 경제는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세계는 혼란에 빠진다. 이것은 이후에 루즈벨트 대통령에 의한 뉴딜정책으로 마무리 된다.

그러나 대공황의 여파는 미국뿐만이 아니었다. 유럽, 특히 전쟁배상금이 어마어마한 액수에 달했던 독일은 다시금 전쟁에 대한 의지를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대표적 인물로 히틀러가 등장한다. 독일의 폴란드 기습침공을 계기로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미국은 연합군에 물자지원만 할뿐 전쟁에 있어선 중립을 유지했지만 일본의 진주만공격으로 전쟁에 참전한다. 독일의 소련침공 실패와 더불어 히틀러는 자결하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일본과 미국 간의 태평양 전쟁은 이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나서야 마무리 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소련중심의 공산주의 국가와 미국중심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사이의 냉전이 시작된다. 미국은 소련의 공산주의 확장을 막기 위해 서유럽에 경제적 지원을 하는 마셜플랜을 실시한다. 이시기에 소련은 미국에 이어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국은 서유럽 국가들과 군사동맹인 나토를 만든다.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은 매카시즘 이라는 반공주의 운동을 불러왔는데 매카시의 무분별한 공산주의자 색출은 결국 의원직을 박탈당하며 끝이 난다. 이후 쿠바가 소련에 의해 공산화가 되었는데 이는 소련과 미국 간의 전쟁의 빌미가 될 뻔 했으나 각국 국가지도자간의 합의로 일단락된다. 이를 계기로 국가 간 직통 연락망인 핫 라인이 생긴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갈등은 베트남 전쟁에서도 나타난다. 자유민주주의의 남부 베트남과 공산주의의 북부 베트남간의 갈등이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는 후에 회담으로 마무리 지어지는데 미국이 패한 최초의 전쟁으로 알려지고 있다.

 

-감상

 

미국은 경제적으로 유용한 땅을 잔뜩 가지고 있다. 지금의 세계 1위의 강대국이 되는 데에는 문명과 기후조건이 인간의 활동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춘 지역이라는 점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뒤늦게 시작한 나라지만 첫 시작은 이미 진행 중이던 나라들의 문명과 기술로 무장한 사람들이라는 굉장한 초석이 깔려 있었다. 넓은 대지와 살기 좋은 기후, 그리고 집약된 선진기술은 이미 미국의 승승장구는 정해져 있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까?

짧은 역사 기간 동안 그들이 발전하고 세계 최고의 국가가 되는 과정에는 늘 전쟁이 함께 해왔다. 유럽 열강간의 식민지 전쟁으로 미지의 땅은 개척되었고 식민지간 전쟁으로 규합되었으며 독립을 위하여 전쟁했다. 남북 간의 전쟁으로 미국은 통일 되었고 1차 세계대전은 미국을 군사적, 경제적 최강의 위치로 올려놓는다. 자본주의 성장의 최고조에 달했을 때 경제 대공황과의 전쟁 아닌 전쟁이 있었고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강함은 다시 한 번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들은 늘 싸워왔고 항상 유리한쪽으로 해결 해왔다. 시대적 흐름에 의한 자연스러운 성장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개척자 정신과 자유주의 정신은 개개인의 자발적인 성장의 원동력이었고 그들은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이미 앞서 나가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미국을 따라가고 있다. 사상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아직 많이 뒤쳐진 상태다. 선진국의 과거가 우리의 현재와 일치 할 순 없겠지만 상당히 많은 배울점이 있는 것 같고 개척자 정신에 대해 다시금 생각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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